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07-15 12:03:00
  • 수정 2018-07-15 12:05:13
기사수정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마을행님에게 예초기를 빌렸다. 불행(?)의 시작은 이때부터 였다. 그랬다. 나의 과도한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동안 공사다망했다. 그리 크지도 않은 텃밭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평소 말로는 "태평농법이네, 무심농법이네" 했지만, 그건 모두 게으른 자의 미사여구였을 뿐이다.


"오늘(14일) 어쨌든 밭에 풀 좀 깎아얄텐데"

▲ 예초기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밭으로 나간 필자.


2주간 간호실습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의 '밀당발언'이다. 자신이 못하니까 나를 부추기는 말이다. 평소 나 혼자 있을 때는 텃밭일을 안 한다는 걸 아내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아내와 함께라야 들에 나간다는 걸 말이다.


눈치챘는가. 최소한 2주를 넘게 밭을 가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니 가보지 않았단 말이다. 밭상태는? '안 봐도 비디오'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마존 정글' 일게다. 그동안 계속 비가 왔고, 채소도 자랐겠지만, 풀은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이 신나게 컸을 거다.


출타 중인 마을 행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님! 예초기 좀 빌려 줘유"

"예초기 시동은 걸 줄 아는 겨?"

"절 뭘로 보시고. 전에 한 번 해봤시유"

"그랴. 그럼 조심해서 다뤄. 다치지말고"



행님의 목소리에서 '물가에 천방지축 아들을 내 놓은' 심정이 묻어 온다. 살짝 나의 자존심이 오기를 발동한다. 사실 몇 년 전에 예초기를 사용해본 건 사실이었다.


예초기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밭으로 갔다. 밭상태는? 아~ 아~ . 그저 탄성만 나올 뿐. 불길한 예상은 한치도 어긋남이 없지 않은가. 어쩌겠는가. 누굴 탓하겠는가. 이 모든 것이 내가 지은 업보이거늘. 내가 '결자해지' 해야 하겠지.


예초기에 시동을 걸었다. " 부르릉", 첨엔 잘 걸렸다. 아! 역시 나란 놈은 하하하. 문제는 좀 있다가 시동이 꺼졌다. 또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또 시동이 걸렸다. 그랬다. 또 꺼졌다. 이거 뭐지. 예초기가 사람 가리나. 주인이 아니라고 놀리나. 이렇게 서너 번 예초기랑 다투다가, 이젠 완전히 시동조차 안 걸린다. 예초기 이놈이 삐쳤나. 초보자 놈이 자신을 함부로 다룬다고.


"행님! 시동이 걸렸다가 꺼져유?"

"할 줄 안다며?"

" ................"

" 초크를 올리고 엑셀을 좀 잡아당기며 해봐"

"알았시유"

▲ 마을 행님이 입원한 병원에 병문안 간 필자


전화민원 상담에 행님은 살짝 ' 다~ 다~ 당황' 하신 듯 보였다. 행님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내 머릿속은 하애졌다. 분명히 전에 해봤는데, 웬일이래. 전화를 끊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어떻게 됐을까? 아! 님은 갔습니다. 한 번 간 님은 돌아올 줄 모릅니다. 난 그저 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녀입니다. 이래도 안돌아 온다. 엿 됐다. 하애졌던 내 머릿속이 행님 머릿속이 되었다.


'또 한 번 더 물어보면 행님이 핀잔주실까. 핀잔은 고사하고 전화로 말기를 알아 듣고 시동을 걸 수나 있을까. 그나저나 오늘 안으로 풀에 손이나 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예초기가 고장난건 아닐까. 그런 거라면 정말 엿 됐다.'


금방 뭐가 순간 스쳐 지나갔다. 황당해하는 행님 얼굴과 짜증스러워하는 아내 얼굴이. '대략난감, 진퇴양난' 이 딱 지금의 내 꼴이다.


이 때,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보였다. 나의 예초기 스승님에게 전화해 보자는 맘이 들었다. 예초기 스승님? 그랬다. 생전 첨 예초기를 사용했을 때 지도해준 벗이었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시동도 내가 아닌 그가 걸어준 게 분명했다. 내가 걸어봤다고 착각한 거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사실 어제 그가 입원한 병원에 병문안 갔었다. 지금 난 환자에게 " 예초기 시동 좀 걸어달라"고 전화하는 중이다. 행님에게 계속 물어보면 다음에 다시는 예초기를 안 빌려 줄 테니까 말이다.


전화로 물어보니 한계가 있었다. 한줄기 빛이 점점 희미해질 즈음 그가 " 예초기사진을 찍어서 보내라" 했다. 보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사진을 놓고 5분간 그가 심오하게 연구한 결과발표였다.


역시 스승님이시다.

문제의 핵심을 찔러주셨다.

그건 바로 ' 연료 밸브' 였다.


▲ 조그만 하얀밸브가 문제의 핵심,,,연료밸브도 내리지 않았으니...



이제야 모든 문제가 주루룩 연결이 된다. 연료밸브가 열리지 않았으니, 시동은 걸렸지만 지속할 수 없었던 거다. 참 간단하고 작은 거지만, 모르면 이리 고생을 해주신다. 조그맣고 하얀 그 밸브가 부러질까봐 과감하게 제쳐보지도 못했던 나를 반성했다. 핵심은 건드리지 못한 채 주변부만 열심히 하던 대로 건드리니, 안 되는 게 당연했다.


드디어 시동이 걸렸다. 들에 나온 지 한 시간 만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예초기와의 사투를 벌인 결과였다. 사실 나와의 사투였다. 내가 잘한 게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안 하던 예초기질에 팔이 후덜거렸다. 무더위란 놈은 무지하게 나를 감쌌다.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다. 하지만 좀 전에 큰산을 넘은 나는 이미 '예초기 도인'처럼 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글을 마을 행님이 보면 큰일인데. 행님이 SNS를 하지 않는 건 하늘이 돕는 거다. 하하하하.


필자. 더아모의집 목사 송상호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rtimes.co.kr/news/view.php?idx=8327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안성불교 사암연합회, 부처님 오신 날…
2024 안성미협 정기전
문화로 살기좋은 문화도시 안성
0.안성시 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운영
'고향사랑 기부제'
한경국립대학교
만복식당
설경철 주산 암산
넥스트팬지아
산책길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