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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2-02 12:32:56
  • 수정 2017-02-17 00: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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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준과 세브란스의학원 2ȸ 졸업생 사진


[편집자 주] 이 달의 독립운동가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가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선정하여 발표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명단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1992년부터 매년 열두 명 이상의 독립 운동가를 각 월별로 지정하여 발표하고, 이들의 공훈을 선양하기 위해 추모 행사와 전시회 등의 기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우리타임즈는 독립기념관 홍보문화부 사이버전략팀의 협조하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한다.



▲ 이태준이 졸업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전경



이태준(李泰俊, 1883. 11. 21. ~ 1921. 2.)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10월 1일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하였고, 재학 시절 병원에 입원한 안창호를 만나 비밀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가입하였다.


1911년 12월 31일 김필순이 서울을 떠난 직후 이태준 또한 평양행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중국 남경에 도착하였지만 여비가 끊어지고 언어장벽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인 기독교도의 도움으로 겨우 기독회의원(基督會醫院) 의사로 취직할 수 있었다.


1914년 김규식을 따라 몽골 고륜으로 이주하였다.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개업하여 근대적인 의료기술로 몽골인들의 전염병을 근절시켰다. 몽골인들은 이태준을 신(神) 또는 부처와 같이 생각하였고, 몽골 정부는 1등급의 국가훈장을 수여하였다.


한편 이태준은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견된 김규식에게 2천원의 독립자금을 제공하였다. 1921년에는 한인사회당 비밀당원으로 소비에트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지원한 자금 40만 루블의 금괴 중 8만 루블을 김립과 함께 상하이로 운송하였다.



▲ 몽골 울란바토르에 2000년 7월에 건립된 이태준 기념관


몽골 고륜으로 돌아오던 길에 북경에서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고, 폭탄제조 기술자 마쟈르를 소개하였다. 다시 몽골 고륜으로 돌아와 4만 루블의 금괴를 추가로 운송하던 중 러시아 백위파 군대에 피체되어 1921년 2월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활동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태준을 2017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 기 간 : 2017. 2. 1. ~ 2. 28.(한 달간)

- 장 소 :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

- 내 용 : 이태준과 세브란스 의학원 2회 졸업생 사진 등 1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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