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유영희의 共感同感] 탁 트인 구름 엷은 하늘이 보름달을 비추었다. 시야가 넓은 하늘에 둥글고 노란 달은 신비해 보인다. 실로 얼마 만에 보는 달구경인가.
한가위답게 한적한 시골이 달을 베어 물 듯 짖는 개들의 컹컹거림에 대문을 내다보니 어린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개들도 심심하지 않을 리 있나. 모든 인기척에 반응하는 것이 시골 개들의 할 일이라 생각하니 그들의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은 예전에 알던 꽃 이름이 얼른 기억이 안 난다. 이 시골집 마당에는 구색을 고루 갖춘, 그러나 무질서한 꽃들이 피고 진다. 마당에 이리저리 번식한 채송화를 각종 토분에 옮겨 심어 여러 개의 채송화 군단이 되었다. 아마릴리우스도 보라색 꽃을 피웠다 잎을 오므리어 달빛을 받는다. 타고 올라가라고 받쳐준 철제 울타리를 의지해 세를 확장한다. 해가 질 무렵이면 어떤 밤풍경이 펼쳐져 나를 설레게 할지 기대가 된다.
달을 정독한 적 없으므로 달은 그저 선채로 바라만 보는 것 인줄 알았는데, 벤치에 누워서도 교교한 달빛과 은유를 주고받을 수 있음을 알았다. 산도 산빛의 음영조차 내리고 달과 연대기를 나누는지 어쩌면 밤은 어두운 블랙이 아니라 달이란 영채에 물드는 숨을 가장 깊게 들이마시고 내쉴 수 있는 힐링의 순간이라 생각해 본다.
어릴 때, 지금 생각하면 참 무섭고 두렵고 슬픈 순간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 생각하는데 짙푸른 청빛 하늘에 달이 참 오지게도 밝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약주를 많이 드시면 싸움이 잦았다. 그날도 엄마를 찾아 발을 동동거리며 길을 걷는데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부지요, 엄마 어디 있어요”. “넘마 도망갔다”라며 일언지하에 그 어린 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의 일은 가물가물 하지만 그날 부녀가 나눈 대화는 달만 보면 기막히게 떠오르는 것이다. 추석이 이틀 지났다. 어제 마당에 서서 달을 한참 바라보았다. 달은 지나간 시간들은 거슬러 오게 하는 마력이 있다. 엄마, 아버지, 언니, 시골 복룡동 우리 집, 감나무 골목, 친구들과 같은 잃어버린 추억들 되살아나 그립고 슬프게 나를 흐느끼게 한다.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거든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라. 한편으론 원망하고 탓을 하는 마음이 스스로 사라진다. 마음이 나태하고 황폐해지거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생각하라. 한편으로 스스로 정신이 분발해진다”/채근담
이런 문제들로 나이를 먹은 지금도 복잡한 사람들은 달빛을 보지 못 한다. 눈이 먼게 아니라 마음이 멀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