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들기엔 아직 더운 피가 흐르고,
영혼을 사르기엔 불씨가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절름발이 신세로세
내딛는 걸음이 힘겨워
곧잘 빈 층계 중간쯤 서보면
꿈들은 날갯짓하면 날아가고
불면의 날들이 재로 돌아서
아예,
눈감아 괴로운 마음 달랠 수 있다면
얼굴을 들기엔 아직 부끄럽고
침묵하기엔 너무 서러운 이름이여

장지선 시인
경기도 안양출생.
『현대수필』 수필 등단(2015년 겨울호),
『한국미소문학』 시 등단(2020년 겨울호)
한국문인협회 회원, 안성예총 감사, 현)안성문인협회 사무차장.
한국방송대 국어국문학과 편집장 역임,
전)하나원 청소년 학교 독서강사, 안성교육청 우수강사인증 현)안성중앙도서관 독서프로그램 강사.
(박용진 시인/평론가) 나이 들어 되돌아본 지난 시간은 찰나에 스친 듯 느껴진다. 정신없을 정도로 매 순간 집중하다 보면 왜 이렇게 세월은 빨리 지나가 버렸냐며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미완성의 결과물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내가 느끼고 감각하는 지금의 순간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일까. 미처 이루지 못한, 못내 아쉬운 일체의 것에 대한 소회가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의 주관성에 얽혀 있기에, 상대적이고 온전하지 못하다.
시간에 대해 말하자면 깊은 우주에서의 시간 속도와 지구 중력에 영향을 받는 시간의 속도는 엄연히 다르다. 사람마다의 시간 속도도 엔트로피(entropy)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즉물적으로 일궈낸 결과물만이 절대적이고 최종이라고 얘기한다면 생의 경험이 많은, 나이 드신 분들은 아니라고 하며, 물질적인 부나 명예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메를로 퐁티는 세계와 주체의 몸을 분리된 실체로 보는 대신에,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세계 속에 놓인 존재이자 사물이라면서, 몸은 세계를 느끼는 감각이자 세계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상호 침투성, 접촉성, 유기적 질감을 강조하였다.
시인의 시제인 '중간인'의 위치에서 만상을 들여다본다면 이미 시인은 스스로가 주재자임을 알아챈 것이다. 감각하는 몸이 느끼는 아쉬움은 절대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무한의 가능성을 앞둔 중간인의 위치에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