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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8-06 08: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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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펑펑 내리는 설산에서

흰 코끼리 탄 소녀

꿈속을 너울너울 걸어 들었다

성당 어귀 어슴푸레 돌아

함빡 낡고 소슬한 뜨락 저며 들며

컹 컹 컹

얼을 뽑고 다녔다

산 너머 햇살 소복이 쌓이고

잔잔한 바람 향긋 일었다

아흐, 홀로 뒤채며 아득히 불렀던 노래여

흰 코끼리의 발짝에 자르르 부서지면서

깡그리 부서지면서

맑게 다시 차오르는 성곽이었다

깨진 기왓장에

동강 난 기둥에

참조기의 눈빛으로 살쪄 있는

흰 코끼리 탄 소녀의 팽팽한 눈물

폐부 깊숙이 더운 사랑으로 살아 있었다

 

 






윤창도 시인

 




경주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2008년《문학저널》등단

시집『지독한 공명』『물의 얼룩이 올챙이라니』

 

 

 





(박용진 시인/평론가) 쇼펜하우어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속에서".라고 했다. 


염세주의자의 부정적인 어법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꿈'은 필요하다. 꿈이 없는 삶은 희망의 부재가 될 것이고 지나친 몽상은 현실을 벗어나게 만들기도 하지만 잠을 자면서 만나는 꿈과 뇌의 노폐물을 걸러주는 수면은 두고서라도 내일은 더 많은 수입을 올렸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오늘 구내식당 반찬은 생선구이가 올랐으면 하는 백일몽, 상상 같은 행위는 삶의 밀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꿈과 현실은 분리 독립된 체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희망과 현실을 부여하게 된다.

 

시인은 "흰 코끼리 탄 소녀의 팽팽한 눈물 / 폐부 깊숙이 더운 사랑으로 살아 있었다"라고 했다. 꿈은 무의식이 펼치는 원형적 상징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잠을 잘 때 꾸는 꿈은 물론, 일상에서도 같다. '흰 코끼리'와 '소녀'의 시적 상징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화가인 잭슨 폴록의 <</span>액션 페인팅> 기법이 떠오른다. 


하나의 특정한 색깔을 읽어가면서 드러나는 유의미와 차원을 넘나들며 다중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메타 회화'의 기법이 시인의 텍스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의 배경이 흰 눈이 쌓인 산이어서, 흰색을 따라가다 보면 꿈과 희망의 정점에 서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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