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허리가 통증이 심해 눈을 뜨고도 일어나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불안장애가 있는 나는 무슨 병이 온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며 휴일을 힘겹게 보냈다. 그러다 정신을 가다듬어 생각해보니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지인의 농장에서 따가운 햇살을 피해 붉게 익은 고추를 따고, 네 이랑 감자를 캐서 날랐던 것이 원인이란 이유를 떠올렸다.
비가 자주 내리고 고장 난 예초기로 풀숲을 이룬 넓은 농장은 모기와 벌레는 물론이고 화사 뱀도 출몰했다. 감자를 캐면서 어릴 적 마당에서 본 이후 처음으로 땅강아지도 보고 새들의 먹이가 되는 어린 애벌레를 보았다. 주인은 부지런히 새 예초기로 풀을 베었다. 우리는 검은 비닐멀칭을 벗기며 순을 걷어 호미로 감자를 캐는 캐미를 누렸다.
기본적인 준비도 없이 허리를 구부려 잘 익은 고추를 고르며 따는 재미와, 주렁주렁 달린 감자알에 취해서 모기에 물리는지 풀에 쓸리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팔뚝이 붉게 익어갔다. 그동안 해마다 이것저것 저 고생을 모른 채 받아만 먹던 무지한 마음이 숙연해졌다. 풀을 깍고 보니 벌레 잔뜩 먹은 복숭아나무가 보이고, 참깨와 메주콩이 맺혔다.
옥수수도 제법 알이 굵어가고 노각 몇 개와 큰 토마토 수확을 했다. 감자 옆에는 풀과 엉킨 고구마가 열심히 자신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초록 고구마 순을 뜯어 잎을 떼고 껍질을 벗기니 요긴한 건강반찬거리가 되었다.
모기에 물린 피부는 가렵고 아픈 허리를 움직이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칠월의 매미소리는 정말 지독하다. 생명이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소리는 맹렬하구나. 백미를 갓 지어 구수한 밥에 고구마 순 볶음 비빔밥을 해서 한 입 먹으면 자연을 오롯이 삼킨 향이 인다. 오른손 손톱 밑에 검은 물이 들었다. 땅 물을 머금은 대자연의 맛이다.
일을 거들어 주고 지금 내 집에는 양파와 감자, 마늘을 비롯한 각종 야채와 과일들이 풍요롭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동경했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연인들의 깊은 산중 삶을 대리 만족하며 그들이 가꾼 텃밭 풍경이 마냥 부러웠다.
하루를 뜨거운 태양아래 고추를 따고, 감자를 캐고, 고구마 순을 따며 일거리 많은 농장의 일을 거드는 노동의 시간을 보냈다. 끙끙 앓으며 다시는 함부로 자연을 꿈꾸지 말라는 말을 내 자신에게 건넨다. 그것은 함부로 생각할 일이 아니며 재미로 견딜 수 없는, 가벼운 응석과 투정으로 견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체험은 그동안의 결핍을 한 번에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무심히 먹었던 땅에서 나는 모든 날 것의 곡식에 감탄하며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