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년 그을음을 씻어내자
구석구석 그을음에 갇힌 시간들이
한 꺼풀씩 옷을 벗는다
대대로 한 가마 밥을 짓던 가마솥
뭇 중생들에게
밥이 아니라 시를 공양해온 가마솥이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염불을 외다가 이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앉아있는 모습이 꼭 부처님 같다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나와
제 솥 안에 하얀 영혼의 쌀을 받아 안치고
쌀밥을 짓는다는 건
본래의 자기 모습을 보는 일
모든 생生에 새 기운을 주는 일이다
오늘 나는 내 안에 가마솥 하나를 걸었다
뚜껑을 열자 오십 년을 기다린 시안詩眼이
들어와 앉는다
두리번거리고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앙가슴에 큰 돌 하나 고이고
석가헌
여름을 넣어 끓인다
이정오 제 1시집 87쪽-
<이정오 시인>
충남 예산 출생
아주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2010년 계간⟪문장⟫신인상 수상
현. 안성문인협회 회원
고은문학연구소 사무국장
만인보아카데미
시집. ‘달에서 여자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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