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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23 08: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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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1호 태풍 ‘우딥’의 북상과 함께 장마가 시작되었다. 중부지방에도 비가 내리며 본격적인 장마권에 들었다. “올해 최고의 폭염”, “폭염 절정 33도”같은 예보가 반복되며. 올여름 더위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이쯤 되니 더는 계절을 ‘좋고 싫은’으로 나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날씨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는 그저 ‘생존의 계절’일 뿐이다.

 

베란다 화분에 심은 한 뼘 크기 여주 모종이 어느새 천장에 닿아 아래로 역주행하 듯 뻗어간다. 그 생명력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푸른 것들은 언제나 편안한 기쁨을 준다. 방울토마토와 당귀도 싱그럽게 자라며 작은 위안을 준다. 장마를 대비해 오이지와 마늘쫑을 담가두었다.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빛 오이지를 보고 있자니 마냥 즐겁다. 오늘은 지인이 따다 준 개복숭아로 효소를 만들 계획이다. 설탕에 몸을 감춘 개복숭아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익어 달콤한 효소가 될 것이다. 그렇다. 시간은 무엇이든 익게 만든다. 마음도, 기억도.

 

사흘째 비가 내린다. 비오는 동안은 잠시나마 폭염이 누그러지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찾아올 찜통더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없는 사람 심정은 없는 사람이 안다”는 말처럼, 여름은 특히 취약한 이들에게 더 잔인하다.

 

뉴스에서 낡은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는 쪽방촌 사람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선풍기 미풍만으로 견디게 된다. 나 하나쯤은 지구를 위해 참자며, 웬만한 더위는 참고 지낸다. 한두 사람만 있는 버스 안 에어컨이 세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 시원함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니 참 이상한 여름이다.

 

그래도 나에겐 자연 바람이 부는 오솔길이 있다. 간혹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보이는 그 길은, 소나무와 메타세콰이어가 양옆을 지키고 있어 언제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한 시간쯤, 왕복 다섯 바퀴를 걷고 시원한 물 한 컵을 마시면 더 바랄 것도 없다. 그 순간엔 다 가진 사람처럼 마음이 가볍다. 살며시 눈을 감고 있으면 어느 푸른 시절이 떠오른다.

 

예전 노트에서 마주한 글귀가 있다.

 

“인간은 나무처럼 덩치가 자랐다고 해서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참나무는 삼백 년 자라 마침내 시들어 통나무가 될 뿐, 하루살이 백합은 5월 꽃밭에서 더욱 아름답다. 비록 그날 밤으로 쓰러져 죽을지라도, 백합은 빛나는 풀이며 꽃이다. 참 아름다움을 보고, 비록 짧은 인생이라 해도 완전하게 살 수 있다.”

 

이 얼마나 겸허한 말인가, 길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짧더라도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잠시 고개를 숙인다.

 

언제든 비를 쏟아낼 듯 흐린 날씨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주 줄기가 유난히 아름답다. 아열대 작물인 여주가 햇빛 부족으로 열매 맺기는 어렵겠지만, 무성한 녹색 잎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과 눈이 호강한다.

 

이런 날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라는 문장에 안겨 조금씩 따스해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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