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제주도 수월봉 아래 지질 트레일 산책로를 걸었다. 지층의 두께를 따라 걷는 길 위에서, 나는 마치 오랜 시간의 기억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자연이 오랜 세월동안 침묵 속에서 쌓아 올린 거대한 석층의 노래는, 인간의 좁은 시각으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경이롭고 경외로움을 안긴다,
트레일을 따라 고산리 우측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지층 아래로는 이름 모를 수종들이 푸르고 튼튼하게 돋아나 있고,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무꽃이 어우러진 해안가 풍경이 햇살에 반짝였다. 그 광경을 보며, 사람의 한 생애 또한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침묵에 잠겼다. 바람과 파도와 햇살 속에서 다듬어지고 깎이며 지나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저마다의 무늬를 남긴 존재가 되어가는 것처럼.
서귀포시에 있는 올레길 12코스 중 하나인 수월봉 지질 트레일은, 화산재 퇴적암층의 신비를 품은 엉알길을 지나 용수포구까지 이어지는 볼거리 많은 길이다.
제주 여행의 첫날, 이 웅장하고 길게 뻗은 지층 트레일을 걸으며 나는 복잡한 일상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 제주는 화산 활동으로 태어난 섬이다. 애월 해변을 비롯해 어느 바닷가를 가도, 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와 돌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제주의 마을 담벼락도 거의가 이런 현무암 돌담으로 낮게 쌓여 정겨운 풍경을 이룬다.
이번 3박 4일 동안의 빽빽한 여행 일정을 인솔할 현지 가이드 선생님은, 곳곳의 지질과 지명, 마을 이야기까지 섬세하게 풀어주었다. 그 덕분에 제주라는 섬을 더 슬기롭게 이해하며 걸을 수 있었다. 함께 길을 걷던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에 쫓기던 사람들이었지만, 풍경 속 반짝이는 윤슬과 부서지는 파도의 물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 하나에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 모두는 같은 마음이 되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감동을 공유하고 있었다.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한없이 겸허해지고 순수해지는 것임을 다시금 느꼈다. 수월봉 지질 트레일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말보다 더 깊은 언어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긴 시간 동안 짧다면 짧은 하루였지만 그 하루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따뜻한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 두 가지는 사랑과 여행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지녔던 고정관념의 생각과 편견을 깨우게 한다. 수월봉에서 시작된 이번 여행이 새로운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얻고, 마음속 단단한 한 겹의 층으로
미래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