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4월의 봄비는 건조한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계절의 숨결을 다시 잇는다. 반가운 비다. 그러나 이 봄비는 아직 만개하지도 못한 벚꽃을 서둘러서 지게 만든다.
가지 끝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꽃잎들은 한순간 바람에 쓸려 흩어진다. 아름다움의 절정은 언제나 이별의 전조처럼 다가온다.
꽃은 때를 기다려 피고, 제 시간이 오면 아무 말 없이 진다. 그 정직하고 담담한 리듬은 인간의 삶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다만 제 자리에 머물다 가는 것. 조팝나무 꽃과 벚꽃으로 물든 통복천의 풍경은 그런 봄날의 순리와 조화를 품고 있다.
삶도 그와 같을 수 있을까. 욕망을 앞세우고, 타인을 밀어내며 살아가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가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른 채, 끝없이 가속하는 삶을 살아간다. 물질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함께 멀어진다. 정작 필요한 것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일지도 모른다.
그런 봄날, 내 시 한 편을 다시 꺼내 본다.
마을엔 꽃잎을 태우고 갈 버스가 없다
새들이 갈긴 배변처럼
사람의 발밑에서 압화 하는 벚꽃
예의를 다해 보내야 하는 유람선은
바람이므로
길 위에 누운 별들은 눈물도 곱다
장지가 없는 별이면 어떠랴
너는 또 이렇게 환생하잖니 초록 잎으로
아직 나 네가 준 첫 아름다움으로
멀미가 심한데
- 꽃의 추도식 / 유영희
벚꽃은 그렇게 짧은 생을 살고, 초록 잎으로 다시 태어난다. 봄의 끝자락에서 그 순환을 바라보며, 삶도 한 송이 꽃처럼 고요히 내려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첫 아름다움’을 가진다. 그것이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피어날 수 있다. 봄비 소리를 들으며 오래된 혼란이 가라앉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풍요롭다.
벚꽃은 진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피어날 시간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답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