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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2-06 06: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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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젖어 오지 마라

 

천 년 모은 비가 한자리에 고여 앉은

깊고도 푸른 그곳

 

물안개 잔 물살 지어 떠밀려 오면

학 한 마리 춤추다 사라지는 곳

 

이팝나무의 전설이

오묘한 비밀 그대로 고여 있다

 

나이 든다는 건, 수려해지는 것

하얀 꽃을 수북이 단 늙은 나무

몸을 비비 틀어 물을 향해 간다

곧, 흙신발을 벗고 뛰어들겠다

 

못 주변에 있는 것은 모두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청동거울 같은 물빛에

나무와 산, 해와 구름도 빠졌다 가고

한밤엔 달도 물에 앉아 제 빛에 흠뻑 취해서 간다

 

그러니 그곳에 젖어 오지 마라

 

커다란 초록 눈 하나가 그곳에 있다

눈동자 속에 분분히 날려 투신하는

하얀 저 꽃잎들

 

시치미 뚝하고 끌어당기는 힘,

산란하는 윤슬

 

 

 

 



강시연 시인

 



2022년 모던포엠 추천작품상

시집『사과가 있는 정물』

 

 

 

 









[박용진 시인/평론가] 경남 밀양에 있는 위량못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든 연못이다. 주변에는 운주암과 이팝나무가 많이 있다.

 

시인은 왜, "그곳에 젖어오지 마라"라고 하였을까.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자기애(自己愛, self-love)의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물에 빠져 죽었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한다.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믿는 자기 중심성 성격으로서 주변을 피폐하게, 파편화하는 인격 장애증상이다.

 

나이 들수록 다른 사람의 '뛰어남'이 눈에 들어온다. 나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아주 특별하게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상'我相에 물들지 말 것을 경계하라는 시인의 신호가 감지된다. 위량 못 주변의 화려한 풍광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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