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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2-24 07: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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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예쁜 우리말 사전에 ‘볕뉘’라는 해와 관련된 우리말이 있다.


‘유난히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작은 햇볕 한 조각’을 말하는데, ‘뉘’는 작고 하찮은 뜻도 가지고 있어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 언어의 활용법에는 서술형과 대화형이 있는데 ‘볕뉘도 안 드는 지하 방에서 다섯 식구나 사는 집이 우리 동네에도 있다고 하는구나’라는 예문을 보고 2층 넓은 나의 창으로 드는 겨울 볕을 보니 볕뉘의 소중함을 체득하게 된다.


지난 첫눈은 감성을 버린 습설의 위력으로 눈의 피해를 입은 농가가 많았다. 축사와 비닐하우스 농가의 피해가 컸고, 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꺾이거나 뽑히는 수난을 겪었다.


안성에 있는 지인의 하우스도 폭삭 무너져 망연자실한 가운데 이번 눈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는 누스보도와 곳곳 둘러본 인근의 피해 실태를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아름다운 흰 눈도 삶의 평화와 안위를 깨는 무기가 된다는 사실에 눈에 대한 감성지수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 반해 또 다른 이는 철거하는 일이 직업이라 일감이 물밀듯 밀려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패해가 누군가의 밥벌이가 되는 것이 주어진 인간의 생일까.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산소 용접기를 이용해 자르고 집게차로 건져 옮기면 볕이 들고, 한동안 일감이 뜸하던 철거반 박 씨의 마음에도 볕이 드는 중의적 볕뉘는 참 아이러니하다.


아직 겨울이 길고 멀다. 한 차례 까마귀 떼가 마을의 전선줄에 음산하게 모여 앉아 길바닥에 배설물을 테러 한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고달팠던 새도 밤에는 바람을 피해 마을을 택하나보다. 그들도 자연의 일부여서 인간과의 시비는 없다. 시비와 언쟁과 항의와 고소의 불협화음은 인간관계에서만 일어난다.


다 떨어진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걸으며 퇴근을 한다. 이 길을 십년 가까이 걷다 보니 쉬어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다. 때가 되면 남들도 다 하고, 하게 될 정년퇴직이 기다린다.


봄처럼 따사롭고 여름처럼 뜨겁던 시간에서 침착하고 부드럽게 나와 만나게 될 시간이 다소 생소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롭게 시작될 시간과의 조우가 기대된다. 지금까지 나를 비춰주던 따사로운 볕뉘의 고마움을 생각하니 떨림이 온다.


빛은 순수하고 변화하는 현실에 힘을 준다. 공주 동학사의 대선사인 성우당 경허 선사(1849~1912)의 빛에 관한 글이다. 눈과 햇빛, 바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날, 소님은 봄이라 믿고 싶었지만 세상은 봄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마음달이 외로워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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