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4-11-15 11:59:00
기사수정

 

▲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맹사성 고택에 다녀왔다. 아산 배방읍 행단길 맹씨 행단은 ‘고려 말-조선 초기의 청백리 맹사성이 살던 곳이다‘,라고 세워져 있다.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출입문과 주변을 물들이고 있다. 세월이 녹록치 않게 흘러간 안위의 위태가 조요로운 고택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그제서야 촘촘이 보인다.

 

그림을 그리듯 내가 본 것들을 그릴 수 있다. 잎은 가벼운 바람에도 뚝뚝 떨어져 고인다. 붉어지는 노란색이 이 계절이 비추는 풍경의 다함은 아닐 것이다. 어느 벼랑에는 머리를 자른 나무들이 수치에 떤다. 기우는 곳은 다음 봄의 따뜻함이리니 민둥 머리면 어떠하리.

 

세덕사는 두문동 72 현인 맹유와 맹희도, 조선조의 정승인 맹사성의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모든 걸 다 버리고도 맹사성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대표적인 서민적 정승으로 유명하다고 하니 오늘날의 정치인 표상의 본이 되지 않겠는가.

 

어느 곳을 가던지 마을이나 고장을 지키는 보호수가 있다. 아산에는 은행나무길이 유명하듯 고택에도 보호수 은행나무가 부지런히 잎을 내리고 있다. 나무를 보면 숭배의 마음이 깃든다. 수백 년 풍상을 견뎌낸 나무의 힘을 무어라 묻고 답할 것인가.

나무는 잎을 떨구면서 세상과 일치를 본 듯하다. 내생의 나를 나무라는 아낌없는 탄익을 고요히 보노라면 숲의 정진은 멀고 깊다.

 

고요하게 풍경이 지고 있다. 밤이슬이 밤하늘 싸늘한 풍미로 다가오듯 밤의 살결은 가볍다. 새들을 위해 남겨둔 붉게 익은 감이 담장 위에 그윽하다. 하나의 생을 위해 생을 펼치는 환희를 보면 세상은 부드러운 깃이 아닐 수 없다.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이다. 단풍을 밟고 싶지 않았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가을, 탄력 가득한 입자를 굴리는 단풍의 계절, 숲은 무성하다. 노란 입자로 물든 나의 에너지는 겨울을 잠자기 위해 방전되었다. 나의 숲속은 사계를 온화하고 충분한 입자로 걸어왔으므로 꿈꾸지 않아도 슬픔이 없다.

 

‘나’란 1인칭 대명사로 순우리말이다. 나에 대해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이미 많은 자아의 숲에 갇혔다. 사람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삶의 주력이 되는 아름다운 지혜의 문턱인 고택의 그늘은 서늘하다. 그곳의 이력을 말해주는 것은 수령을 알 수 없는 신목의 은행나무가 그저 노랑노랑 주문을 외울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이란 행적을 문양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rtimes.co.kr/news/view.php?idx=31283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안성시사회복지협의회 좋은이웃들 사…
2026 안성 평화통일 원탁회의
'미래도약 플랫폼, 안성'
넥스트펜지
안성시민장학회
한경국립대학교, 대학인지도
만복식당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