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아래 위 층간을 두고 사는 언니는 일흔 일곱 나이에도 가게 일에서 손을 놓지 않고 산다. 저녁 찬으로 묵은 김치와 두부를 넣고 청국장을 끓였다. 계단으로 냄새가 풍긴 모양인지 집으로 드는 언니가 문을 두드린다. 모두 나가고 홀로 사는 일인의 저녁을 준비하던 차에 언니의 방문은 늘 반갑다.
자리에 앉으며 “김수미가 죽었대”라고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을 전한다. 칠십대란 동시대를 살아가던 배우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는지 거듭 읊조리며 “사는 기 별거 없어, 이제 다 살았어”하며 한숨소리 흘린다.
어느 누구도 독거의 삶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청년도 중년도 홀로 살면 독거가 되는 것이니 노년의 독거는 더 말해 무엇 하랴. 늙음의 징조는 망가진 관절로 절뚝거리며 걷는 다리를 보면 알고, 여기저기 쑤시고 욱신거리는 육신을 견디기 힘들어 짓는 신음소리가 그렇다. 밥맛을 잃어 식은 밥 한 덩이 물에 말아 먹으며 약의 힘으로 세상을 버티는 거다.
“이렇게 다 죽는데 돈이 뭔 소용이여, 건강이 가장 최고여”라고 말하는 두 사람의 합창이 죽이 맞는다. 평생을 일만 하고 사느라 자신의 삶을 놓치고 산 여자다. 이제라도 그만 하라고 해도 말릴 수 없다. 일이 사는 일의 전부고 신앙이 된 삶을 고치기란 배우가 일과 결탁하며 과로로 살아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청국장과 알타리김치와 급히 한 계란찜이 전부인 따뜻한 흰밥, 그 밥을 달고 맛있게 먹는 언니 모습을 보니 얼마 남지 않을 인생의 배후가 그려져 슬픔이 온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사자성어를 그녀가 알 리 없다. 사람의 인생이 일정하지 않고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무상의 인식을 생각하니 나 또한 그 법칙과 순응할 일이다. 가족도 가까이하지 않으면 남이 된다. 살아가기 힘든 경쟁의 출가하고 어른이 된 자녀가 부모와 가까이하며 살기에 너무 멀다. 다정히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도 아득한 꿈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밥상이 비워졌다. 청국장냄새도 계단 밖을 내려가고 언니도 만복감에 차를 더한다.
평생 자신만의 꿈과 향기를 모르고 살았던 세대인 늙고 힘든 언니가 배가 부르다하니 더 부른 나의 배, 향수는 나이 들며 서로 이완되나 보나.
밥은 다음에 먹는 일이 아니다. 오늘 먹는 것이다. 오늘 먹고 즐거운 그대를 보는 일이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을 맞이하는 정성이 이생의 아름다운 역할임을 함께 하고서야 알았다.
살아생전 밥 한 끼가 인생무상의 순리이자 사랑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