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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4-17 01:26:05
  • 수정 2016-04-17 16: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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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전령사 라일락의 보라빛 속살이 완연하게 드러난 완벽한 봄날이지만 온몸은 이유 없이 저려온다. 700여일을 넘긴 세월호 사고 2주기를 맞는 개운치 않은 4월.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T. S Eliot의 ‘황무지' 가운데 잘 알려진 부분이다.


4월하면 습관적으로 엘리엇의 시를 인용하며 억지로 그 ‘잔인함’에 꿰어 맞추려 하지만 흔쾌히 동의하기엔 개운치 않았다. 더군다나 세월호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안성 내혜홀 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 노란 리본과 함께 걸린 두 번째 봄날은 여전히 부끄럽고 추웠다.



이날 안성에서는 소통과연대 주관으로 안성시민연대,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 전국농민회총연맹안성시지회, 교육수다, 전국교직원노조안성시지회, 청소년을사랑하는모임, 전국금속노조두원정공지회, 민주노총평택안성지부, 금속노조경기지부, 전국의료노조안성병원지부 등 12개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하는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제’가 내혜홀 광장에서 열렸다.


한적한 오후 2시 추모제 관계자 몇몇이 휑한 내혜홀광장 무대 한켠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완벽한 봄의 계절임에도 잿빛 우울을 그려놓고 있었고 광장의 하늘에는 부처님오신 날을 기념하기위해 달아놓은 연등이 바람에 흔들리며 추모 분향을 함께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그 날의 아픈 기억들과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활동 등을 전하며 여전히 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는 유가족과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안성시민 앞에 선 유가족은 아직도 304명의 죄 없는 원혼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며 광화문에서, 안산에서, 진도의 팽목항에서 유가족들은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 싸우고 있으니 “여러분들이 그들의 심장이 돼 주어 세월호가 잠들지 않게 해달라”고 낮게 울부짖었고 모여 앉은 시민들의 처진 어깨의 작은 떨림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어 안성시민연대 스마트 합창단의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라는 노랫말이 들어있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합창할 때 100여명 시민들은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추모합창이 끝나고 마지막 분향이 이뤄졌으며 이윽고 행사를 주관한 소통과연대 이주현 대표, 안성시의회 황진택 부의장, 안성시의회 이기영 자치행정위원장, 시민연대 최현주 공동대표 등이 앞서며 100여명의 시민들이 서인사거리 까지 추모 행진을 펼쳤다.


퇴근시간이었지만 특별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지나는 시민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광신극장 앞에서 추모행진은 멈췄고 16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참여할 ‘서울촛불행 함께버스’에 대한 공지를 알리며 이날 추모식도 끝을 맺었다.



기자가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 앉았고 그 길 위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따르며 죽어간 해맑은 304명의 어린 영혼들을 잊지 않겠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지난해 4월 안성 내혜홀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무대에 오른 시민들의 발언이 함께 걷고 있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던 시민들의 발언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우리의 아픈 역사가 된 그날 4월. 그 아픔을 파묻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걸레로 오물 훔치듯 흔적을 닦아낼 수도 없기 때문에 고통의 옹이를 감싸 안고 있을 수밖에 없겠다싶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은 점점 답답해졌다.


글을 마무리 짓는 이 시간, '아직 세월호에 9명의 사람이 있다'라는 피켓문구가 2014년 4월 16일 사고 당일부터 시작되어 3년째 내리고 있는 비와 함께 가슴으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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