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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0-20 08:29:19
  • 수정 2022-10-20 08: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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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미 시인

[안영미의 봉당에 앉아서] 논에 벼가 노랗다. 어제 벼보다 오늘의 벼가 더 노랗다. 간간이 빈 논이 보이는구나, 했는데 어제보다 오늘 빈 논이 더 많다.


가을이다.


오늘 새벽에는 서리가 내렸다. 그래도 대낮에는 볕이 따갑다. 다행이다. 아직 덜 자란 배추는 나날이 잎을 오므리고 노랗게 고갱이를 앉히느라 바쁘다.


가을이다.


대문 들어가는 입구에 난 채송화를 그냥 두었다. 여름의 일이다. 핑크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있다. 이 가을에 어찌하자는 말이냐.


가을이다.


앞마당으로 진선네 마당으로 뒤꼍으로 감나무잎이 난분분하다. 봉당에까지 날아와 앉아 부엌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건다. 좀 수선스럽다.


가을이다.


감잎의 색깔은 노랑이거나 주황이거나 주홍이거나 갈색이거나. 빨강이 섞이고 초록이 점을 찍기도 했다. 저 감잎의 색깔만으로도 나는 가슴 한쪽에 가을을 걸어놓고 논다.


가을이다.


내 손등의 주름은 여름보다 더 선명하다. 주름 사이사이에 감잎 같은 색을 견주며 웃다가 하늘을 본다. 하늘을 무심히 볼 수 있는 나이다.


가을이다.


나고 자란 울빅이라는 마을에서 자신의 의자 위에 앉아 생을 마감했다는 노르웨이 시인 하우게가 생각나는 가을이다. 그의 시는 가벼운 듯 깊고 추운 듯 따듯하다. 고향처럼.


가을이다.


꽃분홍 맨드라미가 징글맞게 송아리를 부풀린 가을이다. 모가지를 꺾는 것은 내가 아닌 바람이어야 한다. 바람의 메신저는 때로는 아주 잔인하고 단호하다.


지금 그 가을 안에 내가 있다. 이제는 너 말고 내가 있다.


[덧붙이는 글]
작가 안영미 시인은 안성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세 아이를 키웠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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