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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2-06 08:16:39
  • 수정 2022-04-13 07: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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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삭막한 들녘 풍경의 백미로 ‘볏짚 원형 곤포 사일리지가 있다. 유산균을 묻힌 볏짚을 사일로라는 용기에 진공 포장하여 소들의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보관법이다.

 

안성을 지나는 날이면 우연인지 논밭과 야산 호수에 낀 안개와 마주할 때가 있다.

황량한 들 곤포에 쌓인 하얀 마시멜로 같은 신기한 물체에 뿌옇게 안개 덮이면 학의 다리로 서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물안개 마법으로 새록새록 피운 마른 나뭇가지, 짙푸른 소나무, 건물, 철탑과 전선에 앉은 새들을 보면 마음에 놀던 온갖 변덕스런 폭동들이 유순하고 유연해진다.

 

안성은 금광저수지, 마둔저수지, 청용저수지, 양촌저수지, 고삼저수지, 칠곡저수지 등 많은 저수지가 있는데 이는 농업 지역 논농사 물 공급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면서 안개에 젖은 황홀한 연출을 만드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지인의 농장도 휴식기에 들었다. 농작물을 취하고 비워진 흙은 검불에 가려져 봄의 옹알이를 듣는다. 흙과 바람, 물이 흐르고 지나는 옆 동네를 다녀왔다. 멀리 나서는 일이 두려운 세상 안개 드리운 안성 목장에 들어선다. 멀리 보이는 드라마 촬영지라는 건물이 안개 속에서 희미하고도 목가적 느낌을 준다.

 

헐벗어 가지만 남은 나무의 뼈가 곧다. 굵고 가는 가지를 뻗은 나무만큼의 영역처럼 만물은 순응하며 살아간다.

 

국사봉로에 위치한 허브마을에 왔다. 펜션, 레스토랑, 베이커리, 족욕카페, 공방, 소품 샵, 각종 체험 학습 프로그램으로 나름 유명한 곳이었는데 어려운 시국을 넘기기 힘겨웠을 흔적이 닫힌 건물을 오르는 계단마다 고라니 검은 배설물 영롱하다. 베이커리에서 산 빵을 먹으며 남천나무 붉은 열매 앞에 선다. 붉은 열매가 회색 계절의 쓸쓸함을 유화하는 등불로 피어 다행이다.

 

하루해가 짧아졌다. 무리를 지어 집으로 가는 새들의 저녁 옷이 두껍다. 오늘은 어느 가시덤불집 안에 들어 포근히 잠에 들지 삐루루루 회의가 길다. 해넘이를 바라보며 경계에 있는 나무들과 작별하며 나도 마을로 온다.

 

‘단절은 쉽고 공존은 어렵다’는 말을 빌리면 가족, 이웃, 공동체와 더불어 모든 넘나듦의 일들을 보듬고 사는 일은 쉬우면서 어렵다.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도 묻혀온 옆 동네 일들로 황홀하다. 바람, 안개, 누런 잎, 새, 저녁연기와 더불어 볏짚의 꿈이 잠든 하얀 곤포 사일리지 정겨운 안성, 안생安生의 겨울 안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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