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연재> 작가 송상호의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 - 30-8편 서울과의 애매한 거리 때문에 안성장이 유명하다고?
  • 기사등록 2021-07-05 16:55:25
기사수정
30회에 걸쳐 연재되는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는 2019년 9월에 출간되어 3쇄를 찍은 작가 송상호의 책이다. 그가 안성사람들의 자긍심과 안성의 미래를 위해 쓴 책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 총 30편의 이야기를 매주 1편씩 안성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읽도록 만들어졌으며, 안성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편집자 주]

 

▲ 송상호 작가

[송상호의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 4장에서 말한 ‘안성맞춤’과 ‘안성장’은 아주 끈끈한 사이다. 둘이 친해도 너무 친하다. 그 이유는 아래에 가면 “아~ 그랬구나”라 할 수 있다.

 

안성에 전통장날이 3개나 됐던 겨?

 

우선 안성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안성엔 전통 장날이 3곳이란 것은 알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바로 ‘안성장, 죽산장, 일죽장’이다.

 

안성장은 2.7장, 일죽장은 3.8장, 죽산장은 5.10장이라고 한다. 안성장날은 매월 끝자리가 2와 7일로 끝나는 날, 즉 ‘2, 7, 12, 17, 22, 27’에 열린다는 뜻이다.

 

일죽장은 3과 8로 끝나는 날, 죽산장은 5와 8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안성의 장날을 이야기하면서 이 정도는 알고 가야 기본이다.

 

아하. 그래서 장날이 5일마다 한 번 열렸구나.

 

여기서 잠깐. 왜 하필 장날이 5일마다 열리는 5일장일까. 사실 전국적으로 5일장이 가장 보편적이지만, 4일과 9일 주기로 열리는 장이 있기도 하다.

시골 장이 5일에 한 번 열리는 이유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골 장날에 팔러 나오는 물건 중 조선시대엔 농작물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수박 같은 경우다. 수박을 한 번 수확해서 장에 내다 팔고 나면, 그 다음날 바로 수박을 수확할 수 없다. 어린 수박이 크는 시간을 약 5일로 잡는다. 이렇듯 농작물을 키워 장날에 내다파는 주기를 5일 정도로 본 것이다.

 

둘째는 주민들 생활 사이클 때문이다.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 차량이 집에 있어서 움직이기 편하지만, 조선시대엔 한 번 장에 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많게는 하루 이상 걸어서 장에 갔고, 장에서 자신도 물건을 내 팔기도 했고, 그 돈으로 장을 보기도 했다.

 

물론 물물교환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장날이 되면 거의 하루 종일을 장에서 보내곤 했다. 이런 판국에 장날이 자주 열린다면 농민은 농사짓는 시간이 없고, 수공업자도 물건 만들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거지? 하하하하.

 

셋째는 기억하기 좋으라고 5일장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안성장날이 단박에 2.7장으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5일주기로 열리기 때문이다. 만일 4일장이라고 해봐라. ‘4, 8. 12, 16.......’ 등의 주기로 열린다. 요즘처럼 각 가정에 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이 있어서 일정 표시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주도하던 전문장사꾼의 필요 때문이었다. 장사꾼은 수원장에서 물건을 사서 안성장에 와서 팔기도 했고, 안성장에서 물건을 사서 서울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역시 이동수단은 ‘발’이었다. 주기가 너무 가까우면 거리상 이동하기가 불가능 했고, 주기가 너무 멀면 상품의 회전이 느려지는 거였다. 그렇게 장을 돌며 사고파는 전문장사꾼을 보부상이라 했다.

 

서울장보다 컸던 안성장

 

조선시대 3대 장이 어디 어딘지 아는가. 대구, 전주 그리고 우리 안성이다. 오죽하면 속담에도 ‘안성이 서울보다 두세 가지가 더 난다“고 했을까. 딱 봐도 서울은 3대장에 끼지도 못했다.

 

실제로 ‘부역실총(1794년 팔도의 백성이 부담하는 물품과 수량을 조사하여 정리한 조사록)’에 의하면 안성장이 낸 장세는 경기도의 32개 군현 가운데 가장 많은 720냥이었다.

 

그만큼 안성장의 규모가 단연 Top을 찍었다는 거다. 1747년 비변사등록에는 안성시장이 서소문 외 시장 중에는 가장 크다고 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서울의 시장보다 크다고 하였다.

 

<허생전>에 나오는 허생이 서울의 제일 부자 변씨에게 1만 냥을 빌려, 과일을 매점매석하여 큰돈을 벌은 곳이 바로 안성장이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하하하하.

 

안성장이 조선시대 3대 장 중 하나가 되었던 이유.

 

첫째, 역시 안성의 위치적 조건 때문이다. 서울과 삼남(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을 잇는 중간지대라는 것이다. 이 위치적 조건은 안성장이 활성화된 핵심요소다.

 

둘째, 서울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서울을 목표로 올라왔다가, 서울에 이르기도 전에 물건을 사고 팔아치우자, 정작 서울에 좋은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도성 2백리 안에서는 지방상인들끼리 물건을 사고팔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서울과 딱 2백 10리에 위치한 안성에서 법망을 피한 지방상인들끼리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셋째, 안성사람들은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른 지방과 달리 양반들도 상업과 공업에 종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실제로 안성유기(놋그릇)를 만들던 양반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전국어디에도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돈벌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넷째, 안성에 장인(한지, 방각본, 백동연죽, 갖신 등을 대대로 만드는 전물기술자)이 많았고, 이들의 생산품이 안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유기(놋그릇)는 안성장의 대표 생산품이었다.

 

조선시대엔 거의 대부분 지역이 가내수공업이었는데, 안성만큼은 대량생산체계를 갖추었다. 말하자면 전국의 수공업은 중소기업이었다면, 안성은 대기업이었던 셈이다.

 

이런 대기업의 주요 생산품목이 바로 유기였다. 이 유기는 4장에서 말한 것처럼 ‘장내기 유기’와 ‘맞춤 유기’로 나눴다. 장내기 유기는 보부상이 전국을 돌며 팔았고, 그 중 여성들도 많은 역할을 했다.

 

‘맞춤유기’는 안성에서 만들어서 주로 서울의 양반들이나 관청에 납품을 했다. 안성장이 조선시대 3대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순전히 유기 덕분이었다. 이런 면에서 ‘안성장’과 ‘안성맞춤’은 커플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시 안성사람들의 개방성 때문이다. 이것은 셋째 이유인 실용성과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굳이 배타하지 않는 안성의 지역성 때문이다. 배타성이 주요 정서였다면, 어찌 안성에 외지 사람들이 그리 많이 들락날락할 수 있었을까.

 

안성이 이래서 기회의 땅, 우리 한번 살려보자.

 

그렇다면 왜 안성장이 활성화된 요소로 안성의 위치적 조건을 꼽을까. 그것은‘서울과 삼남지방(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란 말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위치적으로 삼남지방과 서울의 중간부분이다.

 

조선시대엔 삼남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가려고 할 때도 안성을 거쳤으며, 서울사람들도 삼남지방으로 갈 때 안성을 지나갔다. 동래-대구-충주-용인-판교-서울로 이어지는 ’영남로‘와 영암-나주-정읍-공주-수원-서울로 연결되는 ’호남로‘를 이어주는 길목에 안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장사는 ’자리와 목‘이 성공의 핵심요인이다.

 

앞에서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안성이 ‘기회의 땅’이라고. 이걸 어떻게 살릴지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고민해보자. 제발~


[덧붙이는 글]
저자 송상호는 안성에 이사 온 지 20년차다. 2001년 일죽에서 ‘더아모의집(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집)’을 열었으나, 텃새로 인해 보금자리에서 세 번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2005년부터 안성신문 등 각종 신문에 기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금광면 양지편마을에서 마을주민과 어울려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19금을 금하라> 유심 | 2018.10.19, <더불어 바이러스> 유심 | 2017.01.18, <그래도 종교가 희망이다> 유심 | 2016.05.31, <모든 종교는 구라다> 개정판, 유심 | 2015.08.31,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 유심 | 2015.08.31, <자녀 독립 만세> 삼인 | 2013.03.19, <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 겨> 자리 | 2012.05.07, <우리 아이 절대 교회 보내지 마라> 자리 | 2011.07.20, <예수의 콤플렉스> 삼인 | 2011.06.30., <학교시대는 끝났다> 신인문사 | 2010.07.26, <모든 종교는 구라다> 자리 | 2009.06.30, <문명 패러독스> 인물과사상사 | 2008.12.26 등 총 11권의 책이 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rtimes.co.kr/news/view.php?idx=17342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안성불교 사암연합회, 부처님 오신 날…
2024 안성미협 정기전
문화로 살기좋은 문화도시 안성
0.안성시 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운영
한경국립대학교
만복식당
설경철 주산 암산
넥스트팬지아
산책길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