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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5-16 15:01:10
  • 수정 2022-04-13 07: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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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의 共感同感] 오월의 휴일 저녁,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에 취해 음악을 듣는다.


원곡을 들어도 좋고, 피아노와 오르골연주, 일본 가수 히라이켄의 음성과, 한국어 자막을 입힌 우리나라 가수의 목소리로 들어도 참 좋은 미국과 영국 동요로 유명한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My Grandfather's Clock)란 곡이다.


영국 조지호텔 로비에 큰 괘종시계가 걸려있었다. 호텔을 운영하던 형제의 형이 죽자 시계가 멈춰버려 동생이 고치었어나 자주 고장이 나던 시계가 동생이 죽자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하듯 영원히 멈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미국의 작곡가 헨리 크레이워크가 만들어 널리 부르게 된 명곡이다.

 

옛날 우리집 안방에도 태엽벽시계가 있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태엽을 감는 일을 “시계 밥 준다”고 하였다. 꽃무늬 벽지가 아버지 담배연기에 색이 바라면 시계도 누런색이 묻어나왔다.

 

밥이 떨어졌는지 멈추고 가지 않는 시계 하나를 구석진 곳에서 발견했다. 문득 시계를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옹기종기 모여 누군가 들려주던 귀신이야기와 도깨비불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밤 열두시가 되면 열두 번치는 “대엥 댕 댕” 소리를 이불 속에서 들으며 가위에 눌리는 지독한 꿈을 꾸며 자라났다.

 

우리와 함께 하던 무수한 시간들은 어디로 다 흘러갔을까. 어머니 아버지가 먼별로 떠나가고, 홀로 유년을 기억하는 쓸쓸하고 무구(無垢)한 시간에 듣는 빗물 소리도 음악 같다.


고장난 시계처럼 몸이 고장난 사람들이 많아졌다. 누구는 요양병원으로 갔다하고, 누구는 그곳에서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누구는 수술을 해야 하고, 암이 재발하고, 일을 하다 쓰러져 쉽게 병원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버리려 했던 시계를 어루만져본다.

 

<길고 커다란 마루 위 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 90년 전에 할아버지 태어나던 날 아침에 받은 시계/ 언제나 정답게 흔들어주던 시계/ 할아버지의 옛날시계 이제 통 가지를 않네>

 

행방을 알 수 없는 시간이 여전히 가고 있다. 출근을 위해 알람을 맞추며 걸어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월 때맞춰 핀 장미꽃도 흠뻑 젖었다.


꽃의 생애 또한 빛나는 날만 있지 않듯이 산다는 것의 문양과 문장이 더 단정하고 깨끗해진다. 낡아지는 문장으로 걸어가는 일은 정다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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