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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1-19 11: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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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었던 머리카락 풀어 빗질하는 저녁

바람에 취한 시간의 비늘들이 말라가는데

그리 살지지 않았던 꽃밭

독을 숨겼거나 약을 숨겼거나

잡고 싶었던 손 놓쳐도 그뿐

어차피 모두 지고 말 뿐인데

누가 부러뜨렸을까

늙은 꽃대 어루만지며

충혈된 눈 비벼봐도

찾을 수 없는 서글픈 성감대

병든 개가 제 발을 하염없이 핥듯

제 상처 외에는 아무것도 아프지 않았었지

그래서 씨앗들은 이승을 훌훌 떠나 보는 것일까

 

깡마른 손으로 머리핀을 꽂고

나는 왜 꽃밭을 떠나지 못하는지

 

    


 

 

화려한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메말라가는 꽃밭에서 잠시 아쉬워함은 누구나 가진 잔여 리비도의 작용일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개화했던 메리골드의 시듦은 끝을 향하지만 새로움의 이전 단계다. 새로움은 기존 가치 체계에 순응해서 일어난다고 말한 보리스처럼 힘을 빼고 있으면 저절로 순환이 된다. 비록 살지지 않는 밭에서 천착(穿鑿)하는 듯 하지만 화자는 꽃에서 오는 전도(傳導) 궤적에서 벗어나 꽃말처럼 만개(滿開)를 예견하고 있다.(박용진 시인/평론가)

 

 

 



김명옥 시인

    


 

2015년《불교문예》등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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