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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11-22 13:59:34
  • 수정 2015-11-22 16: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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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끝에 서있는 가을 나무들은 점점 배경으로 숨고야만다. 어디 배경이 되어가는 것들이 한 두 개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거산이라는 아호에 걸맞게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김영삼 前 대통령 11월 22일 그 역시 숨은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1979년 유신시절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한 이 말은 여전히 새벽을 갈망하는 사람 앞에 서 있으리라.



학창시절 소년 김영삼은 책상 앞에 '미래의 대통령'이란 붓글씨를 써 붙여놓고 대통령의 꿈을 키워나갔던 그. 경남 거제군 장봉면 외포리, 멸치어장을 경영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54년 약관 25세에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후 국회 최다선인 9선 의원.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대선 후보 도전, 3차례 야당 당수 역임의 기록을 남겼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할 것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의원직 제명, 가택연금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1979년 유신 체제의 종식을 앞당기고 1987년에는 6·29 선언을 이끌어냈던 그는 13대 대선에서 야당 분열로 패배한 후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지만, 전격적인 3당 합당으로 돌파하며 14대 대선후보로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 속으로 들어갔다"


변절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해 문민정부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큰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고 외치며 시대의 어둠을 뚫고 나간 그의 일생은 역경을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룬 집념과 결단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우리나라의 문민시대를 연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 도입 등 과감한 개혁조치로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꿔 놓은 커다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차남 김현철과 홍인길 등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사건,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조직인 미림팀에 의한 야당 동향을 감청하는 등의 과도 분명 남았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정계에 투신한 이후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22일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둔 날까지 영욕의 세월 아래엔 부인 손명숙 여사와 딸 혜영, 혜정, 혜숙씨, 아들 은철, 현철 씨 등이 남겨졌다.


한국 정치사에 민주정권 시대를 열게 했던 비교적 공정한 심판자이기도 하였던 그였지만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것 역시 여전히 논란거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족적이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더라도, 우리 시대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 인간 김영삼 前 대통령의 명복을 빌어본다.


안녕히 가시라.




*포커스 뉴스의 사진을 이용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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