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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8-26 18: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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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 선생님! 저 ‘서고’입니다. 제가 책을 냈는데,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전화 한통이 왔다. 전화 내용으로만 보면 젊은 제자가 나이든 스승에게 전화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이분처럼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10년간 책을 준비하게 된 사연


▲ 그가 있는 병실에서 기념으로 한장 찍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어느 날이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가 나의 저서를 읽고 나와 만나고 싶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예상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라 놀랐다. 이제 곧 90세가 된다고 하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후로 두어 번 더 찾아오셨다.


그의 존재가 까마득하게 잊혀지고 있을 즈음, 며칠 전에 전화가 온 것이다. 자신이 책을 냈고, 내가 와서 자신의 책을 꼭 봐주었으면 좋겠다신다. 그가 있는 용인 H요양병원으로 갔다.


연세가 있어서, 청력이 약하고, 시력이 약해서, 첨엔 나를 못알아보셨다. 간병사가 설명을 해주니 그제야 정말 반가워하신다. 오랜만에 만난 절친을 대하듯 하신다. 그동안 미뤄놓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푸신다.


“이 책을 10년동안 준비했어요. 그동안 요양병원을 이곳저곳 옮기는 과정에서 써 놓은 원고를 잃어버리기도 했지요.”


“아~정말 놀랍습니다. 이 연세에 책을 내신 것도 대단하신데, 무려 10년이나 준비해서 책을 내시다니요.”


모든 원고를 그가 손글씨로 직접 작성했다.


▲ 서고 이귀학 선생님이 직접 지으시고, 따님이 정리를 하셨고, 제자의 출판사가 출간했다는 ~

사실 그랬다. 청력도 약하고, 시력도 약하고, 동작도 느릿느릿 하시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읽는 것도 힘든데, 책을 낸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모든 글을 직접 손글씨로 쓴 것도 대단하다.


“사실 이 책을 낸 것은 내 딸(60대)이 나의 글을 정리해줘서 가능했지요.”

“참 다행입니다. 그런 따님을 옆에 두셔서요”


그도 평생 국어교사를 하다가 교직에서 은퇴하신 것처럼, 그의 따님도 교직에 계신다고 했다. ‘부전여전’이란 말은 이때 써야할 듯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서고 선생님! 용케 출판사를 구하셨습니다.”

“내가 복이 많은가 봅니다. 나의 제자가 출판사를 하는데, 이 책을 내어주었다오”


평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나이가 들어 주변에 사람이 남아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평소 삶의 한발자국 한발자국을 얼마나 정성들여 옮겨왔는지 짐작이 간다.


그 연세에도 책을 계속 읽은 흔적을 엿보다.


▲ 지금도 자신의 책을 정독하시면서 오탈자를 찾아내어 메모하신 것이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어서 이 책을 내신 건가요?”

“그건, 내가 죽기 전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으로 살 것인가’를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 대목에서 90이 넘게 살아오신 그의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인류가 인간의 본 바탕을 스스로 깨달아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인류는 가르치는 ‘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도’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책을 한장 한장 넘겨보니, 참고도서와 글들의 출처를 일일이 번호를 매겨 아래에 달아놓았다. 평소 그의 독서력이 엿보인다. 그 연세에도 계속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 민족이 통일의 길에 주도적이어야 합니다. 외세나 북한에 주도권을 넘겨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이 세계에 평화의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우리 민족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전체에게도 이 말을 들려주고 싶었던가 보다. 이길이 바로 그가 강조한 ‘자각도(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듯하다. 각개인이 자각도에 이르러서, 민족과 인류에게로 자각도가 확산되는 길 말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 연세에도 그러한 의지와 열정을 놓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그를 정말 닮고 싶은 것은 바로……..


▲ 몸이 불편하시면서도 굳이 손님은 대문 밖에 나와 인사하셔야 한다시며 끝까지 손을 흔들어~


이러한 의지와 열정을 그 연세에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닮고 싶다. 사실 무엇보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닮고 싶다.


자신보다 40년이나 더 어린 나에게 꼬박꼬박 “일해(나의 예명) 선생님”이라고 호칭하신다. 내가 11권의 책을 냈다는 것과, 내가 추구하는 길이 존경스러워서, 그리 대하시는 듯하다. 이런 그의 태도는 90평생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그의 내공이다. 누구를 만나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말이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90이 넘어도 배우려하고, 깨달으려 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하고, 책을 내어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려하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라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그런 사람으로 늙고 싶다.

 

더아모의 집 목사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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