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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9-28 20:50:17
  • 수정 2015-09-28 20: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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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한사람의 멘토가 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절절하게 밝힌 그의 이야기와 더불어 오늘 두 컷의 사진은 그가 사랑의 메신저라는 사실을 가슴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잔잔한 이야기를 살짝 옮겨본다.


그는 중학교 졸업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여 처음 취직을 했던 그리고 당시 그곳 주소지가 가리봉 수출 3공단인 것으로 추측하는 그는 36년 전 가죽 장갑과 스키 장갑을 만들었던 그 공장을 찾고 싶어 현주소지인 금천구 가산동 디지털 단지로 향한다.


당시 순박했던 산골출신의 충청도 더벅머리 소년은 세상에 찌들어있는 너무나 무섭고 거친 형들 틈바구니서 견디다 못해 불과 한 해도 채우지 못하고 귀향을 결정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의 전환을 갖고 온 계기라고 회상하는 그는 그곳에서 남자공원들 중에는 유일하게 저녁 시간이 되면 산업체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던 늦깎이 한 형을 보며 물론, 그 당시 그 형과 말 한마디 감히 붙여 볼 수도 없었으나 마음속의 멘토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시골 고향으로 귀향하여 광부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 곳에서도 1년도 안되어 광산 사고를 당하여 다리를 다치게 되는 순탄치 않은 일들이 점철되었고, 다시 서울로 상경하여 결국 다녔던 그 공장근처에서 수 년 동안 일을 하게 된다. 그러기를 여러 해 드디어 늘 마음속의 멘토였던 그 형이 다녔던 영등포 공고 산업체 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며 현재 목회자의 길을 걷는데 밀알이 된 그 공부는 그렇게 그 뒤로 대학, 대학원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근래 힘들고 어려웠던 그 당시의 흔적을 찾고 싶어 디지털 단지를 무려 3바퀴를 돌아봤으나 너무 많은 변화에 도저히 그곳을 찾을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한다. 그는 여전히 모든 감사와 모든 사랑의 샘터가 된 그곳을 찾아보는 것은 혹여 그의 헌신이 나태해지진 않을까 저어함일 것이다.




명절 즈음하여 많은 독지가나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기부가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많든 적든 경중이 있겠는가만 오늘 필자가 본 두 장의 사진 속 문구는 유독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혹시 명절에 배고프신 분. 옆 교회 지층 중간 계단에 라면 갖고 가세요.’


그때를 잊지 않고 쉼 없는 성찰을 하는 박종력 목사. 그는 현재 경기도 광명시의 조그만 예배당(대은교회)에서 청소년을 조력하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가족으로 섬기며 오늘도 작지만 과묵한 선행을 베풀고 있다. 그의 봉사와 사랑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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