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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2-03 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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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귀밑머리와 이마 아래 근질거리는 곳들을 보며 염색을 해야 하는 시점을 알게 된다. 염색약을 바르며 유리창밖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동요의 노랫말같이 그윽하게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싯귀 김광균의 <</span>설야>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말한 표현에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인 야릇한 상상력 이미지를 그리며 엄지 위 연필을 돌리던 소녀를 생각한다.

 

첫눈이 배경인 시간으로 가기위해 눈꽃송이가 되어 상주 복룡동 고향집 마당과 초가집으로 날아간다.

 

삼단 머리를 풀고 누운 어머니 옆에 동생과 함께 흰머리를 뽑던 기억이 새록새록 한데, 그런 엄마는 젊고 우리는 어렸다.

 

겨울밤 간식이랄 게 없던 가난한 집, 수저로 갉아 먹던 무는 달았지만 어머니는 특별히 밀가루를 개어 밀가루 부침을 해 주셨는데 정말 너무 맛있어 신나서 동동 밖을 내다보면 어느새 눈이 훨훨 새처럼 나리고 있었다댓돌에 놓인 엄마의 하얀 코고무신과 우리들의 꽃신이 하얀 눈의 노래를 듣는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정호승 시인은 그 이유를 아마그건사랑하는사람들만이첫눈을기다리기때문이라고시적대변을했다.

 

순진무구한 가슴으로 살던 시절 우리는 누구나 첫눈 오는 날 일 년 뒤 여기서 만나자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헤어진다세월이 흐르고 흘러 우리가 한 수많은 약속들은 첫눈을 따라간 사랑이 되고 전설이 되고, 허무한 첫눈의 약속은 산봉에 녹지 않은 적설에 깊이 덮여간다.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도 언젠가 청춘가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청춘을 지나지나 굽어진 잔등에 파리하게 앉은 눈을 바람이 대신 털어준다. 김장 배추와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 노점에도 꽃송이 휘날린다. 겨울로 가는 초입 파란 하늘은 잎을 다 버린 나무가 앙상한 가지로 생을 음각하듯 뻗어있다.

 

눈을 보며, 호젓하게 이색의 눈을 보며(詠雪)라는 한시를 들어보자.

 

송악산 푸르름에 저녁 구름 물들더니

눈발 흩날리자 이미 해는 저물었네

밤들면 혹시나 이 눈이 그치려나

새벽되면 은빛 바다에 차가운 빛 출렁이겠지

 

눈과 시와 잠시 이끌려온 내안의 동화가 실로폰처럼 퐁당거리는 소설의 아침,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가 지금도 시들은 나를 깨워주고 있다. (필자 유영희 詩人)




[덧붙이는 글]
필자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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