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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7-12 0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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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은숙 씨의 시간 속 꽃밭도 바뀌었다.


할머니의 모진 시집살이와 가난에서 벗어나면서 소위 살만해졌을 때, 어여뻤던 엄마의 고운 얼굴이 변해가는 모습을 이십년이 넘도록 지켜보고 있다.

 

주간보호센터 돌보미도 눈살 찌푸리는 잦은 배변과 식탐 그리고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저항으로 출소와 퇴소를 거듭하다 결국 집에서 동생과 돌보기로 결정했다.

 

축 늘어진 몸을 닦이고 기저귀를 갈고, 먹이고 케어 하는 시간이 반복되면서 십 년 가까이 마트에서 일하는 그녀의 가냘픈 어깨는 힘겨움으로 성할 날이 없다.

 

그래도 그녀가 현실의 불행을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너무 사랑하는 내 엄마’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친구 A의 엄마 또한 뇌출혈로 평생을 병원에서 지내시다 얼마 전 수목 장으로 향했다.

 

▲ 친구 A가 애지중지하는 색실로 수를 놓은 엄마의 솜씨 좋은 수예품

휠체어를 밀며 푸른 하늘과 바람과 풀과 나무의 향기를 잊지 않게 하고 싶어 그녀는 엄마의 옷깃을 여미며 귓가에 새처럼 속삭인다.

 

색실로 수를 놓은 엄마의 솜씨 좋은 수예품들을 보듬으며, 병실에 누워 호스로 밀어 넣는 암죽으로 생명을 이어가던 엄마의 가는 숨소리를 늘 품고 있다.

 

한 살 아래 남동생은 직장과 결혼도 포기하고 긴 세월 엄마의 병간호에 인생을 올인 했다. 사랑도 연애도 없이 부모를 위한 삶을 사는 친구 A의 동생을 본다는 일이 희귀하게 느껴지던 차에 친구 A가 웃지 못 할 에피소드 하나를 무심히 흘렸다.

 

야간에 엄마를 돌보던 동생과 교대하러 병실에 들어선 아침 마침 간호사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아버님 지금 잠깐 밖에 나가셨어요?’라며 누나인 자신을 동생의 딸로 오해한 간호사 말에 당혹함과 쓴웃음과 함께 겉늙어가는 남동생 모습에 안쓰러움이 겹쳐 먹먹했었다고.

 

존 록펠러 3세는 인생은 경영이라고 했다. 목표와 전략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는데, 인생이 늘 뜻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역경과 좌절의 순간조차 인생이란 화폭 위에 그린 그림이라니, 그 다음 일어날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친구 A는 두 아들이 있다. 작은 아들은 지금 군인이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남편이 호적에서 파겠다고 평생 보지 않겠노라 화가 단단히 나도록 만든 큰 아들이 있다.

 

대학 4학년 때, 장애복지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아들이 하반신 마비의 아가씨를 돌보며 사랑을 하게 되면서 집을 나갔다.

 

사랑을 반대 할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아들이 택한 무모한 선택이었지만, 애지중지 잘 키워 놓은 어린 아들에 대한 분노는 말문을 잃게 만들었다.

 

시간이 가도 쥐눈이콩처럼 슬픔을 가득안고 사는 아들의 눈동자를 생각 할 때마다 득도의 경지는 고사하고 세월이 유수라 했던가, 그리움이 쌓여가는 그녀에게 이제 조금씩 미움의 고리는 지워지며, ‘받아들이는 법’이 문을 두드린다.

 

나는 행복 연구자 서은국 교수의 ‘불행도 삶의 일부여서,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라며, ‘행복은 도달했다고 받는 상장이 아닌 지침서일 뿐’이라는 명징한 주장을 기억해 냈다.

 

아들의 아기를 보러가는 양주 가는 기차 속 배경 위에 세상 풍경들과 눈 맞추는 순수한 영혼의 친구 A와 착하고 따스한 은숙 씨가 서은국교수의 그 주장과 오버랩 된다.

 

나는 그들의 다음 정거장은 그래도 행복한 휴게소이기를 염원하며, 천 가지 좋은 일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뜻의 ‘천상운집’을 노래해 준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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