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을 접은 쓸쓸한 어둠이
푸른 피를 증발시키고
얼룩진 말이 무거워 허공에 눕고 싶은 날
폭압적인 현실을 벗어나
내 안에 울음을 풀어놓고 싶은 날엔
나는 내게 몰입한 그 시간부터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한꺼번에 몰렸던 붉은 수밀도로
안으로만 뒹굴고 있던 통증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 처절한 삶의 뿌리에서 벗어난다
늘 휴일의 바람벽에 붙잡혀 몸부림쳤던 알몸의 공허
오늘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잡념들을 버린 채
내 소소한 사랑을 수서역에 묻는다
쉴 새 없는 물질문명의 발전 속도와 목표 기대치에 도달하기 힘든 현실에서 누구나 지칠법한 현실이다. 수서역은 장거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고속열차와 전철의 교차 환승이 가능한 곳으로 마치 두물머리와 같다. 시인은 멀리 떠나며 욱여뒀던 수밀도水蜜桃의 자신을 발견했다. 달콤하다. 수서역이라는 다중 선택의 공간은 그 자체로 쉼이 되지 않을까. (박용진 시인/평론가)
박정이 시인
1997년 시집, 2009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후가 증발한다』 『여왕의 거울』 『목성의 춤』
포에트리 황진이 문학상, 제9회 서울시예술 문학상 수상
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 대표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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