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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08 09:04:59
  • 수정 2022-04-13 07: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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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큰언니가 평택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 간지 수십 년이 지났다. 일곱 딸의 맏언니로 나에게는 엄마와 같은 나이차이가 난다. 17세 결혼을 하여 집을 떠나갔고 큰언니 얼굴을 10살에 처음 보게 되었다.

 

과거를 회상하자면, 가난하게 사는 부모 모습이 불쌍하고 마음에 걸려 평택으로 불러올린 것이다. 짐칸 같은 기차를 타고 평택역에 내리니 마중 나온 아줌마가 큰언니였다. ‘큰언니’라는 존재가 혜성처럼 나타났으니 부끄럽고 어색해 인사도 잘못하고 숨고만 싶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장에 좌판을 펴고 고구마장사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자리를 잡기까지 언니네 집에서 함께 지냈다. 당시 공도에 고구마 밭이 많았다. 고구마 밭을 사서 부모님은 거기서 일을 하셨고 조카와 나는 일요일이면 종일 밭일을 도왔다.

 

이른 아침 고구마 순을 걷다가 똬리를 튼 누런 뱀을 보고 기절초풍하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수레 가득 고구마 상자를 쌓아 싣고 공도에서 걸어 평택시장에 오면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말수가 없는 언니라 살가움을 느끼기보다 어려웠다.

 

부자로 잘 살지만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노후를 보내다가 형부 건강이 나빠지면서 몇 년을 간병하며 지냈다. 많이 쇠약해진 언니는 양쪽 무릎 수술을 위해 요양병원에 남편을 입원시키고 얼마 전 한쪽 다리 수술을 마치고 퇴원 한다고 하여, 자매가 다 모여 집으로 병문안을 가려던 참이었다.

 

퇴원 전날 식사를 하다가 행동이 이상해 검사를 받으니 진단 결과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일주일 후 무릎 2차 수술도 예정되어 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우리 자매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였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거리 풍경 때문도 있지만 인생이 허무하다는 마음이 허를 찌른다.

 

시간을 내어 가까운 사람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인정해주어라/ 표현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 것이라고 단정하지 마라/ 직접 말로 표현하라/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존 맥스웰이 남긴 명언들이 지금 순간 가슴에 가득 차오른다.

 

큰언니에게 먼저 다정하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타지에 정 붙이며 살아가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언니에게 남은 시간의 간격이 더 좁아지기 전에 만나면 고맙다고, 무엇이든 고맙다고 말하며 안아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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