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전 내내 전화기만 만지작거린다.
어제부터 주민센터 담당자는 연락이 없고
아이들이 학교로 간 뒤에도
날파리 한 마리 걸리지 않는
거미줄엔 바람만 들락거린다.
또 가로정비팀이 철거 계고장을 들고 왔다.
수북이 쌓인 과태료 고지서는 누레지고
미세진동도 느껴지지 않는 오늘도
작은놈은 학원비를 보챈다.
그제 저녁부터 굶고 한 일이 없으니
규칙적으로 누던 똥도 마렵지 않고
내 일이 없는 내일이 안 보이는
내일이라고 내 일이 생길 가망은 없다.
참새가 뚫고 간 구멍을 때워야 하는데
실젖*이 말라 거미줄이 나오지 않는다.
기다림의 끝,
3번 방사실 언저리 나선실에서 진동이 온다.
*실젖 : 방적 돌기(紡績突起)
시는 삶의 한 조각이다. 살다 보면 메말라 답답한 날도 있다. 오만가지 통지서엔 내일이 안 보이는 바람만 가득하다. 비슷한 양태의 시가 절망적이지 않은 것은 화자의 자아가 다음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느낀 순간은 이미 과거다. 진동을 느끼는 것은 충분한 질료(質料)로서 긍정의 완전현실태(energeia)에 이미 근접해있음을 알 수 있다. (박용진 시인/평론가)
변종태 시인
1990년부터 <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멕시코 행 열차는 어디서 타지』
『니체와 함께 간 선술집에서』
『안티를 위하여』
『미친 닭을 위한 변명』
제주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현,《계간문예》《다층》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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