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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11-15 15:10:20
  • 수정 2016-01-27 13: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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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듣다 (1). - 안성우체국 편

사람의 향기를 전하는 이름, 집배원 그들의 하루.



가을은 가을인가보다. 거리도 천천히 가을빛의 끝에 서서 하염없이 물들어간다. 계절은 그 풍성함에서 사람들의 일과는 상관없이 시간 맞춰 비움의 미학을 일깨우며 자기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 안성여성집배원 1호 황해성씨



/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 한 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


누구나 아는 가수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옆에서란 노래 일부분이다. 기자는 지난 9일 그 멋진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듯 다가서는 가을 속에서 검정색 쫄쫄이 티셔츠를 입고 한껏 멋을 내지르며 들어올 것 같은 나이 쉰 넘은 여자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아니, 계절의 끝에서 사람의 진한 향기를 받아쓰고 싶었을 것이다.


▲ 우편물 분류작업중인 황해성씨



‘안성 제 1호 여성 집배원’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황해성씨. 그녀의 하루에는 집배원 일을 시작한 1999년부터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리는 2015년까지 약 17년간의 세월이 들어 있었고, 이제 그녀의 하루를 모두 빌려 보기로 했다.


“처음 부업으로 일을 하다 5년이 지나며 본격적으로 집배원 생활을 시작했죠. 제 적성에 맞아요.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도 있고, 설령 안 좋은 일이 있다가도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어느새 잊게 되지요. 일이 많아 시간이 갈수록 사실 힘들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정년의 그날까지 계속 할 참이거든요.”


아침 6시30분에 배송을 시작해 수백 통이 넘는 편지며 등기우편물들을 배송하고 나면 금방 저녁이 되어 버린다며 싫지 않은 기자의 인터뷰에 대한 대답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제법 세월의 노련함이 베여있었다.


▲ 등기우편을 배달하는 황해성씨


여성으로서는 쉽지 않은 집배원 생활을 하고 있는 황해성씨는 “월말에는 밤 10시까지 배송을 해야 할 때가 많아요.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죠.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 제 적성에 맞아요. 재미가 있어요. 공인 아닌 공인이 되어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목욕탕을 못갈 정도 예요.”라며 발그레해지는 얼굴로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여린 미소에 기자는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진 그녀의 오롯한 맘에 숙연해졌다.


하지만 그녀 말처럼 적성에 맞고 재미만 있었을까? 기자가 잠깐 둘러 본 집배원들의 하루는 녹록치 않았다. 물류센터로부터 도착한 우편물과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은 부산하고 바쁜 하루의 시작이었다. 우편물은 1차 분류를 거쳐, 2차 분류작업으로 이어졌고, 손과 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지러운 혼란으로 보였지만, 그 안에서는 체계적인 질서와 시스템이 작동했다.


집배원들은 분류작업을 거친 우편물들을 개인 이륜차에 실었다. 이어 당일 처리 물량을 개인별 피디에이를 통해 등록했고 피디에이 등록과 동시에 각 고객별로 당일 배송을 안내하는 문자가 전달된다. 발착장에서 우체국을 출발하는 ‘출국’ 준비가 비로소 완료되는 시점이다.


우체국을 출발한 집배원은 오전10시부터 오후4시까지 정해진 코스를 따라 배달 작업을 진행한다. 오후 4시경 우체국으로 귀국해 7시전까지 당일 우편물에 대한 분류작업을 하면 하루 일과가 정리된다. 또한 집배원들을 둘러싼 배달 환경이 녹록치 않은 이유들은 산재해 있다. 고객들의 요구는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으며. 고객들의 나 중심적 사고는 ‘불필요한 민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집배원들은 정해진 코스대로 순서를 따라 우편물을 배달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이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민원 대상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경우는 집배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 안성 집배원들의 이야기들 좌로부터 오덕근 지부장, 황해성씨, 유미선씨.



오덕근 안성우체국 지부장은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금씩만 이해해준다면 서로가 편해지는데, 상황은 거꾸로 돌아간다. 고객들은 갈수록 편리한 것만 쫓고, 요구는 늘고, 또 자기 한 사람의 요구에만 맞춰달라고 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그래도 시민들의 생각을 최대한 이해하려 애쓴다.” 고객 스스로가 집배원들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들을 이해할 것인가. 짜증은 짜증을 더할 뿐이다. 일의 해결이나,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짜증 섞인 민원 콜은 그래서 종종 야속하기까지 하다.


어르신들만 거주하는 집에서는 종종 부탁을 해올 때가 많다. 은행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을 위해 내 부모 일처럼 도와준다는 유미선씨 그녀 역시 안성우체국에 근무하는 세 명의 여성 집배원 가운데 한명이다. 시간이 더 걸리고 번거롭지만 고객만족을 위해, 기꺼이 어르신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며 옅은 눈웃음을 짓는 그녀 역시 아름다웠다.

이런 것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정이란 것 아닐까? 과거에도 그랬다. 집배원들은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편지만큼이나, 반가운 손님이기도 했다. 집으로 불러들여 물 한 모금을 건넸던 시절이 있었고, 집배원들은 고객의 집에 놓인 숟가락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찾거나 회복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 집배원은 우편물이나 택배 물건을 전하는 단순 전달자로 한정됐고, 그 마저도 주어진 시간에 서둘러야 하는 기능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 안성우체국 전경



이륜차로 도로를 오가며 안전의 위협에 노출돼 있고, 주어진 시간에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업무상 중압감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고객의 완고한 요구나 짜증을 현장에서 감내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로의 전락은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다.


그들과의 길진 않았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반문하다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대견한 그들의 일상을 애써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우편물을 배달하다보니 그 집안 사정까지 의지와는 무관하게 알게 되지요. 어느 집에는 어떤 고민이 있는지, 또 어느 집에는 어떤 기쁜 일이 있는지, 우편물에 적힌 내용들을 보면 그 집안 사정을 알 수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황해성씨. “그러다가 그렇게 이해하고 정들면 모두가 이웃사촌이 되죠.”라고 말한다.


“우편물을 배달하다 정말 마음 아플 때는 군에서 온 소포를 전달할 때에요. 통곡하는 부모들 곁에 서 있으면 어느새 눈물이 흐르죠. 지금까지 몇 번이고 소포를 전달했는데 그때 마다 울게 되요. 그냥 모른 척 하고 나올 수가 없더라고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일터로 총총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련했다.


집배원. 그들은 오늘도 기쁜 이야기를 품고 시민들에게 달려간다. 아니 어쩌면 슬픈 소식일 수 도 있다. 바람의 뒷발에 채인 듯 흔들리는 가슴으로 우체국을 나오는 기자는 손 편지 한통 써서 누구에게든 숭고한 집배원들의 맘을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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