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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7-05 08:37:23
  • 수정 2022-04-13 07: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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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멀쩡하던 오른쪽 엄지와 검지 사이에 혹이 커지고 있다. 첫 시작은 조금 가려워 긁기 시작 하면서다. 거슬려 피부과를 찾아갔더니 정형외과로 가라고 한다.

 

별 것 아닌 걸로 생각을 했는데 세 곳의 병원에서 대학병원 소견서를 내민다. 이유는 수술하기 애매한 부위면서 당겨 꿰매면 엄지손가락 부근에 근육이 없어 평생 굽히지 못 하는 장애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정상이던 것을 “긁어 부스럼”만든 꼴이 되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라는 생채기가 지닌 뜻은 "Let sleeing dogs lie" 즉 잠자고 있는 개는 건드리지 말라, 지나간 과거지사를 들추어 힘들게 하지 마라는 또 다른 의미의 강한 ‘일축’이 담겨있기도 하다.

 

팔 년째 동거중인 반려 고양이가 병이 났다. 탈 없이 잘 먹고 잘 놀던 건강한 고양이가 병이 나서 통 먹지를 않는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주사기로 강제로 약을 먹이고 입맛을 되찾기 위해 캔 따개가 되었다. 몇 날을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작은 동물 때문에 초사가 되었다.

 

무릎 연골과 허리디스크 통증으로 두 언니가 수술과 시술을 동시에 받았다. 통증보다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데 입맛을 잃어 야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먹성이 좋아 밥심으로 장사를 하며 살아왔는데 세월에 병들고 약해진 마음을 보는 마음이 먹먹해진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잘 먹고 기운이 나야 한 세상 고달프지 않는 법이다. 아프니까 웃음도 잃고 사는 ‘락’(樂)을 잃은 것 같다. 건강하지 않으면 일억천금이 다 무슨 소용인가.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생의 기쁨이자 근원적 행복인 것을.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는 말이 이렇게 소중한 것임을 실감하며 삶을 조명해 본다.

 

예를 든 속담 외에도 우리 생활에서 어떤 사실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하는 간결한 관용어구 무수한 속담이 있다. 백과에서 속담의 일반화를 알아보니 조선 중기<어우아담>이나 <동문유해>에 쓰인 사실보다 앞서 <삼국유사> 권5의 욱면비염불서승이라는 조항에 ‘내 일 바빠 한댁 [大家] 방아 서두른다.’를 보면 훨씬 앞선 속담 사용을 알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들어 귀에 익은 속담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꿩 먹고, 알 먹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등 다시 생각해보아도 상황과 이치가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저녁 무렵 천변 산책을 나갔다. 개망초, 붉은토끼풀꽃, 벌노랑이꽃이 색을 잃어가는 동안 메꽃과 환삼덩굴이 세를 키우고 있었다. 습한 땅을 기어 나온 지렁이들이 밟히고 더러는 아슬아슬 밭 밑을 피해 느리게 기어가는 모습을 보며 삶의 힘겨움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보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시게(Look before you leap).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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