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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짜잔! 울 마을 모판내기 대작전, 어때요?” - 품앗이, 공동울력, 공동식사가 살아 있는 안성마을이야기.
  • 기사등록 2019-04-16 18:14:16
  • 수정 2019-04-16 18: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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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요즘 누가 그래?”

▲ 우리 마을은 ‘품앗이, 울력, 공동식사’ 등 이런 일들이 옛날 일이 아닌 현재진행중이다.

 

이렇게 말하겠지만, 아직도 우리 마을은 그렇다. 우리 마을은 ‘품앗이, 울력, 공동식사’ 등 이런 일들이 옛날 일이 아닌 현재진행중이다.


바로 내가 사는 양지편마을(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석하리)이다. 겨우내 마을회관에서 공동식사를 하는 것은 일상이다. 다른 계절에도 잊을 만하면 마을공동식사를 하곤 한다. 마을이장님의 구수한 마을방송을 듣고 모여든 마을사람들의 공동울력도 생활이다.


지금은 지난 6일 이루어진 우리 마을 연례행사를 소개하겠다. 바로 ‘모판내기 공동작업’이다. 이것은 굳이 이름 붙이자면 ‘품앗이’이지만, 자세히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품앗이란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이다. 농부들끼리 서로 인력을 나누는 일이다. ‘자세히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말대로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아하’하실 게다.


“제 성은 ‘사’씨요, 이름은 ‘무장’입니다.”


“이봐, 사무장(몇 년 전 6년 동안 농촌체험마을 사무장을 한 나에게 마을 사람들은 ‘사무장’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성은 ‘사’씨이고, 이름이 ‘무장’인 셈이다. 하하하하)!!”


며칠 전, 우리 집 바로 아랫집 마을 형님이 나를 부른다. 평소 이 형님이 나를 부르는 이유는 딱 2가지다. 하나는 “술 먹자”고, 또 하나는 “일하자”다. 오늘은 딱 보니 “일하자”다.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낼 모래 울집에 일할 겨. 알지?”


이게 다다. 길게 설명도 하지 않는다. 남이 들으면, “뭘 알지?”라 싶지만, 그 형님은 그런 스타일이다. 좋은 말로 ‘시크’한 스타일이겠지만, 자상함이라곤 ‘개미 똥’만큼도 없는 듯한 형님이다. 더 웃긴 건 나의 대답이다.


“알았시유”


이렇게 우리는 웃으면서 계약 아닌 계약을 맺는다.


평소 내가 글을 쓰느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는 걸 아는 형님이지만, 한번 약속하면 잘 지킨다는 걸 아는 형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 가신다.


결전의 날 아침이다. 실수할까봐 알람을 맞춰 놓은 덕을 본다. 알람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눈을 비비고 세수도 안한 채로 형님 집 마당에 간다. 예상대로(?) 형님은 이미 일어나서 형님아들과 작업 준비가 한창이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사전작업을 준비해놓아야 한다. 일 잘하는 사장님은 직원이 오기 전에 미리 일거리를 준비해놓고, 일이 시작되면 허둥대지 않고 일거리를 착착 대어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이 형님이 바로 그런 스타일이다.


“승진이 그리 좋으면 자네나 실컷 햐”


▲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건너 마을 ‘왕 트랙터’의 주인인 형님이다. 그는 매년 울 마을에 와서 모판을 내는데 동참한다.

잠시 후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든다. 바로 옆집에 사는 부녀회장과 아들도, 소도 키우고 개도 키우는 마을형수도, 얼마 전 칠순 아내를 여읜 마을아버지도, 한옥집이 좋다고 이사 온 형님내외분도, 이장아들 뒀다고 어깨가 한껏 올라간 마을엄니도, 얼마 전 이사 와서 새집 경치에 흠뻑 취한 마을 형수도 모두 웃는 얼굴이다.


물론 성은 ‘사’씨요, 이름은 ‘무장’인 나도 있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건너 마을 ‘왕 트랙터’의 주인인 형님이다. 그는 매년 울 마을에 와서 모판을 내는데 동참한다.


“싸장님! 나빠요. 아침부터 일시키면서 아무것도 안주는 싸장님 나빠요”

이런 우스갯소리를 누군가 던지니, 주인장이 말한다.

“어허. 장사 하루 이틀 하나. 기둘려봐여~~”


이런 농들이 오가면서 신나게 모판을 만들어낸다. 농협에서 사온 모판을 끊어지지 않게 재빨리 대어주는 게 나의 역할이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나의 역할이다. 마을아버지와 형수가 모판을 내 손 옆으로 준비해주면, 내 손은 그것을 받들어 모판 컨베이어에 갖다 댄다.


요령? 다른 거 없다. ‘싸장님’이 물레를 돌리면서 볍씨를 뿌릴 때, 모판이 끊어지지 않으면 된다. 이일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거나 긴장의 끈을 놓치면 모판이 끊어질 수 있다. 그러면 볍씨가 모판에 떨어지지 않고, 기계판 위에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싸장님’의 눈은 레이저 눈이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졸라’ 열심히 해야 한다.


“아부지, 올핸 제가 승진했시유.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부지가 지금 하시는 모판 갖다 대어주는 일을 했는데, 올핸 제가 ‘싸장님’바로 옆자리에서 모판 맞추어 주는 일을 하니께유”


“승진이 그리 좋으면 자네나 실컷 햐. 승진 뭐 까짓 거 일만 많이 하고 하하하하.”


사실 웃다가도 짠하다. 얼마 전 칠순 아내를 여의신 마을아버지의 농담실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고마운 일이다.

“오호, 울 형수님 멋져부러”


▲ 한 줄 또는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모판을 경운기에서 내려 모판 안방에다가 안착시킨다.


그렇게 모판 내는 일을 마치면, 경운기에 모판을 싣고 가야할 곳이 있다. 바로 논바닥이다. 갑자기 논바닥은 왜냐고? 그렇다. 논바닥에 모판을 모시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때, 건너 마을 ‘왕 트랙터’ 형님이 힘을 쓸 차례다. 그 트랙터가 논을 간다. 갈고 난 자리에 못줄을 띄운다. 못줄을 띄워야 오와 열이 맞는다. 못줄을 논바닥에 척하고 박으면, 그제야 경운기와 사람들이 바빠진다. 한 줄 또는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모판을 경운기에서 내려 모판 안방에다가 안착시킨다.


올해는 경운기 운전을 마을 형수님이 한다.

“오호! 울 형수님 멋져부러”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이 일도 손발이 안 맞으면 서로 짜증나는 일이다. 매일같이 하는 일이 아니라 매년같이 하는 일이니 첨부터 손발이 딱딱 맞을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이 양반들이 누구인가. 평생 이 일을 해온 양반들이 아닌가. 첨에 약간의 흔들림은 어느 새 시골들녘 하늘 위로 날려버린다.


모판을 안착시키면, 마을아버지와 마을엄니가 짝이 되어 따라오면서 비닐하우스 대를 꽂는다. 그 위로 넓은 비닐이 대를 덮는다. 덮자마자 ‘삽 부대’가 삽질을 한다. “이런 삽질하고 있네”란 농담은 해마다 단골 농담이다. 올해도 그렇다.


비닐이 날아가지 말고 자리를 잘 잡으라고, 비닐하우스 가를 흙으로 덮는 일이 끝난다. 그렇게 모판을 비닐하우스 안방에 안착시키면 한 줄은 끝난다. 오늘은 모두 세 줄이다. 세 줄이 끝나면, 또 왕 트랙터 형님의 차례다. 그 형님의 능수능란한 트랙터 질은 모판하우스 가로 물길을 낸다. 하우스에 물이 잘 대어지도록. 이집 주인장은 시냇가에 흐르는 물을 호스로 대어 물길을 하우스로 잡아온다. 그렇게 물이 흐르고, 어느 정도 하우스 옆을 채우면 작업은 끝난다.


“농부도 아닌데 난 왜 거기 간 겨?”


▲ 비닐이 날아가지 말고 자리를 잘 잡으라고, 비닐하우스 가를 흙으로 덮는 일이 끝난다. (사진은 필자 송상호 더아모의집 목사)


이런 일을 열댓 명의 마을 사람들이 했기에, 오전 7시에 시작해서 오전 10시에 끝낼 수 있다. 사람이 적으면 하루 종일 해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시도도 할 수 없다. 오후가 되면 봄바람이 많이 분다.


봄바람이 불기 전인 오전에 후딱 해치우는 쾌거는 순전히 사람 머릿수 때문에 가능하다. 요즘처럼 기계가 발달한 시대에도 사람의 머릿수가 큰 역할을 하는 이 일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런 일이란 걸 잘 알고 마음과 시간을 낸 울 마을 사람들이 계신 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나저나 해마다 이 일을 하고 있는 나는 농부도 아닌데 왜 간 거지? 품앗이라고 하면 농부들끼리 서로 ‘농사인력 주고받기’가 아니던가. 한옥에 이사 온 마을 형님내외도, 새로 이사 온 형수도 사실은 논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럼에도 맘을 같이 한다.


아무래도 우리 마을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가 보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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