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mmi001@hanmail.net
금이나 줄로 만든 선線은 우리 생활에서 많이 접하며 경계가 되기도 한다. 포괄적인 의미망을 가진 경계에서 시인은 인식 범위 내 지켜야 할 경계를 넘으며 생긴 사소한 사건을 말했지만 의도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늘 생성, 소멸이 되는 선과 경계는 인식 사유의 범주를 확장시켜 준다.
경계는 모호성과 많은 상상력을 토대로 틈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물리적 표상을 떠올리는 틈에는 잠재적이거나 즉물적인, 부재와 실재가 공존한다. 지난 기억이 이러하다. 지금은 부재가 된 지난 일들은 기억에서 실재하기 때문이다. 틈에 대한 정의는 많지만 시인의 선(경계)에는 잉여의 시간이 묻혀 있다.
심리적인 공간인 선(틈)에는 당시의 아쉬웠던 감정은 틈에 머물고 선만 넘지 않았으면 삶이 더 나아졌을 거란 생각과 장미 꽃밭에 쳐놓은 줄을 넘으면서 옷이 찢어진 일들을 보더라도 경계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파생한다.
선을 넘으면서 체험하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현재라는 시간성에서, 선을 넘지 않았으면 그때와 지금의 상태는 달라졌을까. 미지의 상상을 확장시키는 시인의 선(경계)에 대해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가 떠오른다.
삶은 숱한 선(경계, 틈)의 생성과 소멸의 연속이며 때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늘 기억해야 하는, 경계를 응시하는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통시적 회상에서 선을 따라 길항하는 시인의 선을 따라가 본다. (박용진 시인 평론가)
유병란 시인
2014년《불교문예》등단
시집『엄마를 태우다』『그러려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