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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야행성 / 박춘희 2023-11-30
김영식 mmi001@hanmail.net

 

 

 

빛이 들지 않는 지하 방은 편안한 안식처이다

 

눅눅하고 부드러운 습기가 있는 곳

열심히 땅굴을 파서 멋진 터널을 만들고

주름진 터널이 지면 위를 기어 다니는 상상을 한다

 

땅거미 지고 어둠이 내리면 나는 활발해진다

짙은 농도의 상상 속으로 들어가 나만의 신세계를 펼친다

 

아침이 오는지, 하루가 지났는지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미세한 소리와 움직임으로 예민해진 나의 감각이

야행성이 되어 백지 위를 뛰어다닌다

 

밤을 벗겨 낮을 꺼내는 스크래치 아르누보*의 명작같이

어둠 속에서 모던하고 우아한 이야기를 발굴한다

읽어 줄 사람 하나 없지만

어떤 장르가 되어도 상관없다

 

기억까지 황홀하게 탈색되어

오직 오늘의 나만이 남을 때까지 짜릿함을 즐긴다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지하 방을 끊임없이 즐기는 21세기의 특별한 종족이다

 

 

*스크래치 아르누보속에는 여러 가지 색이 있고, 위에 검은색으로 덫 씌워있어 벗겨내는 미술작품이다.

 

 

 

 

 



승마원을 운영하며 낭송가로서 만족도가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시인은 왜 지하방에서의 삶을 짜릿하게 즐기는 특별한 종족이라 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문학이란 다른 종류의 삶을 창조하는 것이고 다른 종류의 삶을 쓰는 것이다."라고 했다. 시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생성하며 다른 접근법인 원근법적이고 이면의 포착과 사유로 작품을 승화, 삶을 안착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줄어든 수면세포로 잠이 들기가 어려울 때는 이런저런 기억들이 사람을 괴롭힌다. 어둠 속 어렴풋한 정사면체의 방에서 잠을 자고 난 다음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힘들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을 포착한 시인은 아르누보처럼 덧칠과 탈피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박용진 시인/평론가)

 

 

 



박춘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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